감정 수업- 음주욕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의 감정 수업 中

음주욕- 화려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발버둥

 

음주욕은, 술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나 사랑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동창회에 자주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삶이 피폐해질수록 과거의 영광을 확인하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때 반장이었고 한때 공부도 잘해서 남들의 부러움과 아울러 선생님의 칭찬 속에 살았던 시절이 너무나 그리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동창회는 항상 모종의 갈등을 자아내기 마련입니다. 과거에 자신보다 공부를 못했던 아이가 어느 사이엔가 검사 부인이나 의사 부인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대학교수나 방송인이 되어 명성을 날리고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 잘나가는 친구는 과거 자신보다 잘나갔던 친구들 앞에서 뻐기기 위해 동창회에 나온 것입니다. 당연히 동창회에서 충돌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과거 영광스러운 권좌에 앉아 있던 사람과 과거에는 불우한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 존경 받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 사이에서 동창회를 지배하는 헤게모니 싸움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여왕과 현재의 여왕 중 누가 동창회 모임에서 큰소리를 낼 것인가... 이것은 대답할 필요도 없는 질문입니다. 과거의 여왕이 대취할 테니까요. 비록 술은 잘 마시지 못하지만 그녀는 독한 소주라도 마시고 또 마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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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깨끗이 잊을 정도로 마시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과거의 여왕은 다시 화려했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취기를 빌려 과거로 돌아가는데 성공한 그녀는 현재의 여왕이 과거에는 자기 시녀에 과했다는 사실을 계속 좌중에게 주지시킬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대부분 친구들은 과거의 여왕이 취했다고 조롱하면서 그녀의 술주정만 탓할 테니 말입니다. 이어서 그들은 과거의 여왕을 버리고 단호히 현재의 여왕 편을 들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부침에 대한 슬픈 보고서, 그래서 술을 마시게 만드는 묘한 공간으로 동창회가 아직도 남아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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