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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관계 이야기

왜 부모와 똑같이 행동하게 될까요?

by 안전기지 2026.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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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우리 부모처럼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들었던 말 중에는 지금도 기억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못 해?”

“울지 마.”

“말대꾸하지 마.”

그때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중에 절대 저렇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어느 날 아이에게 화를 내다가 멈칫합니다.

방금 내가 한 말이 너무 익숙합니다.

표정도,

말투도,

화를 내는 방식도

어린 시절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부모와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나는 왜 그렇게 싫었던 부모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을까?”

부모를 닮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가장 싫어했던 관계조차 가장 오래 경험한 관계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반복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는 것보다 관계를 경험하며 배웁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을 처음 배우는 사람입니다.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는지,

상대가 실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화를 내면 안 돼.”

라고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더 깊게 남을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관계는 설명보다 경험으로 학습되기 때문입니다.


반복된 경험은 마음속에 ‘관계의 방식’으로 남습니다.

어린 시절 실수할 때마다 비난을 받았다면 마음에는 단순히

“부모가 나를 혼냈다.”

라는 기억만 남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한 사람 → 비난받는다’

라는 관계의 방식이 함께 남을 수 있습니다.

슬퍼할 때

“그만 울어.”

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면

‘힘든 감정 → 빨리 멈추게 해야 한다’

는 방식이 익숙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의 실수와 감정을 마주하면 그 익숙한 방식이 자동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상관계에서는 부모와의 관계가 마음속에 내면화된다고 봅니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중요한 사람과의 반복적인 관계 경험이 마음속에 남는다고 설명합니다.

부모의 모습만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화를 내는 부모 + 겁먹고 있는 나’

‘무시하는 부모 + 인정받으려는 나’

‘통제하는 부모 + 순응하는 나’

처럼 관계의 두 자리가 함께 내면화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한쪽 자리에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도 모르게 반대편 자리에 서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혼나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혼내는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화를 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섭고,

억울하고,

울거나 참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내가 부모가 되면 관계에서 위치가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내가 힘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순간 마음속에 익숙하게 저장되어 있던 관계가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혼나는 아이’

였는데 현재에는 자신도 모르게

‘혼내는 부모’

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공격자와의 동일시’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사람의 태도나 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는 현상을 공격자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the Aggressor)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에게 강한 부모는 매우 큰 존재입니다.

아이에게는 그 관계에서 벗어날 힘이 없습니다.

때로는 무력한 아이의 자리에 있는 것보다 강한 사람의 방식을 내면화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비슷한 상황에서 과거 자신을 힘들게 했던 방식이 자신의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않을 거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모와 다르게 살겠다고 강하게 결심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결심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 않을 것’은 알고 있지만 ‘대신 어떻게 할 것인지’는 배운 적이 없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계속 말을 듣지 않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모릅니다.

결국 감정이 높아지면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방식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익숙한 방식이 더 쉽게 나타납니다.

평소에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기다려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곤하고,

경제적인 걱정이 있고,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었으며,

아이까지 말을 듣지 않는 순간에는 여유가 줄어듭니다.

그러면 새로운 방식보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자동적인 방식이 먼저 나타납니다.

그래서 부모를 닮는 행동은 특히 감정이 높아질 때 더 잘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내가 억압했던 모습을 아이가 보여줄 때 더 강하게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울 수 없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정도 가지고 왜 울어?”

라는 말을 들으며 감정을 참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부모가 된 뒤 아이가 크게 울면 이상할 정도로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그만 좀 울어!”

어쩌면 아이의 울음이 단순히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오래전에 허락받지 못했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포기했던 욕구를 아이가 자유롭게 표현할 때도 그렇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해야 했던 사람에게

“싫어!”

라고 말하는 아이가 유난히 버릇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항상 양보해야 했던 사람에게

“내가 먼저 할 거야.”

라고 말하는 아이가 이기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요구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 계속 무언가를 요구하는 아이가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너는 어떻게 그래?”

라는 오래된 감정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부모에게서 수많은 말을 듣습니다.

“잘해야지.”

“남에게 피해 주면 안 돼.”

“그 정도는 참아야지.”

이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가 옆에 없어도 마음속에서 들릴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내사(Introjection)의 관점에서 이해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내가 부모가 되면 그 말을 다시 아이에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를 이해한다고 해서 부모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반복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 부모도 힘들어서 그랬겠지.”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부모의 성장환경과 한계를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와 정당화는 다릅니다.

부모에게 사정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행동으로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이해하는 목적은 부모를 용서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관계가 지금의 나에게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를 닮았다”와 “부모와 똑같다”도 다릅니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뒤

“결국 나도 우리 엄마랑 똑같아.”

라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리고,

후회하고,

왜 그런지 생각하며,

다른 방식을 찾으려고 한다면 이미 과거의 관계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반복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선택이 가능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복을 끊으려면 ‘하지 않는 것’보다 ‘새로운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소리 지르지 말자.”

에서 멈추지 않고

“화가 나면 어떻게 말할까?”

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못 해?”

대신

“어디가 어려웠는지 같이 보자.”

“그만 울어.”

대신

“많이 속상했구나. 진정되면 이야기하자.”

“말대꾸하지 마.”

대신

“네 생각이 다른 건 알겠어. 그래도 서로 소리 지르지는 말자.”

새로운 관계 방식도 반복해서 사용해야 익숙해집니다.


이미 부모처럼 행동했다면 관계를 다시 수선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화를 냈습니다.

이미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돌아가서 말할 수 있습니다.

“아까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어. 네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있었지만 그렇게 말한 건 미안해.”

이 경험은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관계와 다른 결말을 만들어줍니다.

과거에는 갈등 뒤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면 이번에는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경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를 다르게 대하는 과정에서 내 어린 시절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울어도 괜찮아.”

라고 말하다가 문득 마음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린 시절 듣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실수할 수도 있어.”

라고 말하면서

“나도 이런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양육은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면서 때로는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세대 간 전수는 운명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받은 관계 방식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세대 간 전수(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수된다고 해서 반드시 그대로 반복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부모의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알아차리고,

그 순간 어떤 감정이 움직이는지 이해하며,

새로운 반응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관계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는 내가 처음 배운 관계의 방식일 수 있지만 앞으로 사용할 유일한 방식은 아닙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세요.

부모와 닮은 행동을 발견했다면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부모의 어떤 모습을 가장 닮기 싫어했는가?”

“그런데 어떤 순간에 내가 그 모습과 비슷해지는가?”

“그 순간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아이의 어떤 모습이 나에게 유난히 견디기 어려운가?”

“그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허락되었던 것인가?”

“나는 부모에게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은 새롭게 배우고 싶은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받았던 것을 그대로 물려주는 대신, 내가 받고 싶었던 것을 아이에게 줄 수 있을까?”


마음 한마디

부모와 똑같이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두려울 수 있습니다.

“결국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관계를 백지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오래 경험했던 관계를 가지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여유가 없을 때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발견한 다음입니다.

“나는 왜 이러지?”

라고 자신을 비난하는 데 머무르는 대신

“아, 이것이 내가 배웠던 방식이구나.”

라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아직 어색하더라도 다른 말을 해볼 것인지.

부모에게 받은 모든 것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다음 세대로 전달할지는 조금씩 선택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위한 한 줄

“부모에게서 배운 관계의 방식은 나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반드시 내 아이에게 물려주어야 할 결말은 아닙니다.”

 

 

※ 본 글은 대상관계이론의 내면화, 내사(Introjection), 공격자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the Aggressor), 세대 간 전수 및 관계 수선(Repair)의 관점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심리교육을 위해 쉽게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부모와 비슷한 행동이 나타나는 데에는 성장 경험뿐 아니라 현재의 스트레스, 양육환경, 기질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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