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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관계 이야기

나는 왜 항상 참을까요?

by 안전기지 2026.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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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것도 알고, 힘든 것도 아는데… 그냥 내가 참는 게 편해요.”

서운한 일이 있어도 바로 말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도 일단 삼킵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냥 넘어가자.”

라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힘들어 보이면 내 마음은 뒤로 미루고,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먼저 양보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너무 지칩니다.

아무도 내가 힘든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서운하고,

마음속에는 오래된 감정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왜 그때 말하지 않았어?”

라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참는 게 나을 것 같았어.”

왜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보다 참는 것이 더 익숙할까요?

어쩌면 참는 것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익혀온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참는 것은 처음부터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참을 필요가 있습니다.

화가 난다고 모든 감정을 바로 표현할 수는 없고,

상대의 상황을 고려해야 할 때도 있으며,

원하는 것을 미룰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내가 참는 사람이 될 때입니다.

상대는 불편하면 말하는데 나는 참습니다.

상대는 거절하는데 나는 받아줍니다.

상대는 화를 내는데 나는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한쪽만 계속 참는 관계에서는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이 보이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에게 ‘참는 것’은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가 힘들어하거나,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아이의 요구를 부담스러워했다면 아이는 조금씩 주변을 살피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말하면 엄마가 힘들어할 것 같아.”

“아빠 화났으니까 조용히 있어야겠다.”

자신의 감정보다 중요한 사람의 상태를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반복되면 하나의 관계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이 안전했을 수도 있습니다.

말을 잘 듣고,

떼쓰지 않고,

혼자서 잘하며,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는 아이.

어른들은 이런 아이를 보며

“참 착하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왜 그렇게 착해야 했는지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충분히 안정되어 있어서 잘 기다립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면 관계가 불편해질 것 같아서 조용해집니다.

겉으로는 둘 다 착한 아이처럼 보이지만 마음속 경험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감정을 표현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경험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아이가 화를 냅니다.

“버릇없이 어디서 화를 내?”

아이가 웁니다.

“그 정도 가지고 왜 울어?”

서운하다고 말합니다.

“너만 힘든 줄 알아?”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감정 자체보다 감정을 표현한 뒤 일어나는 일을 두려워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차 배우게 됩니다.

“말하지 않는 게 낫다.”

“내가 참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참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읽기도 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불편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분명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데 곧바로 상대의 입장을 생각합니다.

“저 사람도 힘들어서 그랬겠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내가 너무 예민한가?”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은 중요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상대를 이해하는 순간마다 내 감정이 사라진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내가 상처받지 않은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신화가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는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화(Mentalization)는 자신과 타인의 행동 뒤에 있는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타인의 마음은 아주 잘 생각하면서 정작 자신의 마음은 잘 보지 못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랬을까?”

는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나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지?”

는 묻지 않습니다.

상대에게는 수많은 이유를 허용하면서 자신에게는

“이 정도는 참아야지.”

라고 말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타인을 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이해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입니다.


참는 마음에는 갈등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서운하다고 말하면 상대도 화를 낼 것 같습니다.

거절하면 관계가 어색해질 것 같고,

불편함을 표현하면

“너 왜 이렇게 예민해?”

라는 말을 들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참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 감정보다 관계가 더 중요해.”

하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관계는 남아 있어도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점점 사라질 수 있습니다.


“말해도 달라지는 게 없어”라고 배운 경우도 있습니다.

참는 사람에게 반드시 버림받음의 두려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충분히 말해봤을 수도 있습니다.

싫다고 했고,

힘들다고 했고,

도와달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기대를 접습니다.

“말해봤자 뭐 해.”

이 경우 침묵은 순응이라기보다 반복된 무력감에서 만들어진 포기일 수도 있습니다.


위니컷의 ‘거짓자기’와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위니컷(D. W. Winnicott)은 환경의 요구에 지나치게 맞추면서 자신의 자발적인 욕구가 뒤로 밀리는 모습을 거짓자기(False Self)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분위기를 맞추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행동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보다

“내가 어떻게 해야 모두가 편할까?”

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다면 참는 것은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기 전에 이미 참고 있는 것입니다.


참는 사람에게는 ‘분노’가 특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슬픔은 느껴도 화는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가 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누군가에게 공격적인 사람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노가 올라오면 곧바로 다른 감정으로 바꿉니다.

“내가 이해해야지.”

“별일 아니야.”

“내가 예민한 거겠지.”

하지만 분노에는 중요한 기능이 있습니다.

“지금 나의 경계가 침범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

는 것을 알려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계속 참으면 감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에서는 감정이 계속 쌓입니다.

어느 순간 아주 작은 일에 크게 화를 내거나,

갑자기 관계를 끊고 싶어지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수 있습니다.

혹은 상대에게 직접 화내지는 않지만

“나는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라는 서운함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통로를 찾기도 합니다.


때로는 상대가 알아서 알아주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바랍니다.

“이 정도 했으면 알겠지.”

“내가 힘든 걸 눈치채겠지.”

그런데 상대는 모릅니다.

그러면 더 서운합니다.

“어떻게 이것도 모를 수 있지?”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상대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읽어왔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내 마음을 그렇게 알아주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다가 한꺼번에 관계를 끊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참아온 사람에게 관계의 끝은 갑작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상대는 말합니다.

“갑자기 왜 그래?”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갑자기가 아닙니다.

수십 번의 서운함,

수많은 양보,

말하지 못한 분노가 이미 쌓여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상대가 몰랐을 뿐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관계에서는 끝까지 참다가 떠나는 것보다 작은 불편함을 조금씩 말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참지 않는다고 모든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표현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과 다릅니다.

“너는 항상 왜 그래?”

대신

“그렇게 말하면 나는 불편해.”

“다시는 부탁하지 마.”

대신

“이번에는 제가 하기 어렵습니다.”

“나만 맨날 참잖아!”

대신

“이 부분은 나도 원하는 방향을 이야기하고 싶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싫은지’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참아온 사람은 거절하는 것보다 먼저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내가 싫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상대가 부탁했을 때 자동적으로

“괜찮아요.”

라고 말하기 전에 잠시 멈춰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나는 정말 괜찮은가?”

바로 대답하기 어렵다면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게요.”

라고 시간을 가져도 됩니다.

이 짧은 멈춤이 타인의 요구와 나의 마음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죄책감이 든다고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으로 거절하거나 불편함을 표현하면 마음이 편해지기보다 오히려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괜히 말했나?”

오랫동안 참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었다면 참지 않는 행동은 마음에게 위험한 행동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책감이 올라온다고 해서 곧바로

“내가 잘못했다.”

라고 결론 내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행동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편함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반응은 관계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내가 정중하게

“싫어요.”

“그건 어렵습니다.”

“그 말은 서운했습니다.”

라고 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들으려고 하는지,

화를 내며 죄책감을 주는지,

내 말을 무시하는지,

다시 조율하려고 하는지.

참지 않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내가 참았기 때문에 유지되었던 관계인지, 서로를 존중해서 유지되는 관계인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세요.

또 참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참고 있는가?”

“말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아 두려운가?”

“나는 상대의 감정을 어디까지 책임지고 있는가?”

“상대를 이해하는 동안 내 마음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화가 없는 사람인가, 화를 느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인가?”

“말해도 소용없다고 언제부터 생각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자주 나를 포기하고 있는가?”


마음 한마디

늘 참는 자신을 보며

“내가 너무 바보 같은가?”

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참는 것은 오랫동안 관계를 지키고 갈등을 피하며 살아가기 위해 익힌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과거에 나를 지켜주었던 방식이 지금도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참기 전에 잠깐 멈추어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아주 조금씩 그 마음을 관계 안에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한다고 모든 사람이 이해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관계는 한 사람이 계속 참아야만 유지되는 관계와는 다릅니다.

상대의 마음이 존재하는 만큼 내 마음도 그 관계 안에 존재할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위한 한 줄

“참지 않는다는 것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 나를 지우지 않는 것입니다.”

 

 

※ 본 글은 애착 및 대상관계 관점, Winnicott의 거짓자기(False Self), 정신화(Mentalization), 자기주장과 심리적 경계에 관한 관점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심리교육을 위해 쉽게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참는 행동에는 성장 경험뿐 아니라 개인의 기질, 문화적 규범, 현재 관계의 권력 차이와 실제적인 불이익 가능성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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