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저 사람은 항상 자기 잘못은 없다고 할까요?"
문제가 생기면 늘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해서 내가 화낸 거잖아."
"회사가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어."
"나는 잘못한 게 없어."
처음에는 정말 억울한 일이 있었나 싶어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그런데 관계가 반복될수록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상황은 계속 달라지는데 잘못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울까요?
단순히 이기적이거나 뻔뻔하기 때문일까요?
때로는 그 행동 뒤에 자신의 부족함을 견디기 어려운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내가 잘못했구나."
라는 생각은 불편하지만 견딜 수 있는 경험입니다.
실수했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 전체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잘못할 수 있어."
이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어렵습니다.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내가 잘못했다."
가 아니라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라는 느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단순한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 전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남 탓은 마음을 보호하는 방어기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인 방법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을 때 올라오는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무가치감 등을 견디기 어렵다면 마음은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 저 사람 문제야."
이렇게 책임을 외부로 돌리면 잠시 마음이 편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투사 — 내 안에서 견디기 어려운 것을 상대에게서 보는 마음
이와 관련해 자주 이야기되는 방어기제가 투사(Projection)입니다.
자신 안에서 인정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모습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화가 나 있는데
"왜 너는 그렇게 화가 나 있어?"
라고 말하거나,
자신이 상대를 무시하고 있으면서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해."
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상대가 실제로 화를 내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비난을 투사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비슷한 갈등이 여러 관계에서 반복되는데도 항상 원인이 타인에게만 있다고 느끼는 패턴입니다.
대상관계에서는 '좋은 나'를 지키려는 마음을 살펴봅니다.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처음부터 복잡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바라보는 능력은 관계 속에서 서서히 발달합니다.
충분히 안정적인 경험이 쌓이면 사람은 점차 이해하게 됩니다.
"엄마에게 화가 나지만 엄마를 사랑할 수도 있어."
"내가 잘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야."
"저 사람이 나를 서운하게 했지만 좋은 면도 있어."
이처럼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통합이 어려운 사람은 갈등이 생겼을 때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
는 방식으로 관계를 나누어 경험하기 쉽습니다.
이것을 정신역동적으로는 분열(Splitting)이라는 개념과 연결해 이해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실수해도 괜찮다'는 경험이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실수할 때마다 심하게 비난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못 해?"
"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왜 맨날 문제를 일으켜?"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실수 = 혼남 = 수치심 = 사랑받지 못함
이라는 연결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 뒤에 오히려 취약한 자존감이 숨어 있는 경우가 있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책임을 대신 져주는 환경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늘 비난받은 사람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경험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부모가 대신 해결해주고,
아이의 잘못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려주고,
실패와 좌절을 지나치게 막아주었다면,
자신의 행동과 결과를 연결해서 생각하는 능력을 충분히 배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즉,
너무 많이 비난받아도 책임을 피할 수 있고, 책임질 기회를 갖지 못해도 책임을 배우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남 탓을 하면 당장은 편하지만 관계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책임을 외부로 돌리면 자신의 자존감을 잠시 보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가가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배우자 탓,
직장 탓,
부모 탓,
친구 탓만 한다면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점점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이 항상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제에 기여한 부분을 볼 수 있어야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생깁니다.
그래서 책임을 인정하는 능력은 자신을 공격하는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에 영향력을 되찾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 대화할 때 가장 힘든 이유
남 탓을 많이 하는 사람과 대화하면 어느 순간 상대방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그때는 이런 상황이었어."
하지만 설명을 하면 할수록 논쟁이 길어집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핵심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잘못했는지를 결정하는 싸움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모든 비난에 하나씩 반박하기보다,
사실과 책임을 분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네가 화난 것은 이해해. 하지만 네가 소리를 지른 행동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어."
감정은 인정하되 행동의 책임까지 대신 지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책임을 대신 지는 것은 다릅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취약한 자존감 때문일 수도 있고,
수치심을 견디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했다고 해서 계속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적인 이유는 행동을 설명할 수 있지만, 행동의 책임까지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이 구분은 관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혹시 나도 남 탓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남 탓을 하는 사람을 떠올리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이 방어는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겼을 때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잘못 말고 내가 기여한 부분은 없을까?"
"내가 인정하기 가장 싫은 부분은 무엇일까?"
"잘못을 인정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껴질까?"
"나는 지금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나 자신을 비난하는 것을 혼동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모두 떠안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 몫과 상대의 몫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항상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이번에는 내가 잘못했다."
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라고 느낄 수 있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좋은 나와 부족한 나,
성공한 나와 실패한 나,
친절한 나와 화내는 나를 모두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대상관계적 관점에서는 이런 과정을 자기의 통합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마음 한마디
남 탓을 많이 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항상 자신은 옳고,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단단함 아래에는 때때로
"내가 잘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라는 취약한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의 시작은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잘못이 있어도 내 몫이 있을 수 있고, 내가 잘못했어도 내가 나쁜 사람 전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계속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을 위한 한 줄
"남 탓은 자신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일 수 있지만, 자신의 몫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을 바꿀 힘도 생깁니다."
※ 본 글은 정신분석의 방어기제, 투사(Projection), 분열(Splitting), 수치심 및 대상관계적 관점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심리교육을 위해 쉽게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타인의 책임을 지적하는 모든 행동이 방어기제나 투사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부당한 대우나 피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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