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요?"
부모가 되고 나면 생각보다 자주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서,
바쁜 마음에 아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고 나서,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는 말을 하고 나서 생각합니다.
"내가 아이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좋은 부모라면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요즘은 부모가 알아야 할 것도 많습니다.
애착, 공감, 감정코칭, 훈육, 자존감….
알면 알수록 오히려 부모는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부모는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부모일까요?
위니컷은 '충분히 좋은 부모'를 이야기했습니다.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도널드 위니컷(D. W. Winnicott)은 양육에서 중요한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입니다.
이 말은
"적당히 해도 된다."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필요에 충분히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성장에 따라 조금씩 좌절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부모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많이 맞춰줍니다.
아기는 혼자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배가 고프면 울고,
무서우면 울고,
불편하면 웁니다.
이때 부모가 다가와 안아주고,
먹여주고,
달래줍니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몸과 마음으로 배웁니다.
"내가 힘들 때 누군가 와주는구나."
"세상은 어느 정도 안전한 곳이구나."
이것이 아이가 세상을 신뢰하는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하지만 부모가 언제나 즉시 반응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동생을 돌보고 있을 수도 있고,
부모 역시 피곤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항상 바로 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해줘!"
라고 해도 기다려야 할 때가 생깁니다.
이런 작은 좌절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미 충분한 안정감을 경험한 아이는 조금씩 배울 수 있습니다.
"엄마가 지금 바로 오지 않아도 나를 잊은 것은 아니구나."
"내가 원하는 것이 항상 바로 이루어지지는 않는구나."
"기다려도 괜찮구나."
적절한 좌절도 아이를 성장시킵니다.
부모가 아이의 모든 불편을 미리 제거해준다면 아이는 좌절을 견디는 능력을 연습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을 반복해서 혼자 견뎌야 한다면 세상을 안전하게 느끼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입니다.
위니컷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좌절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기본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모든 것을 대신 해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점차 스스로 기다리고, 생각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갑니다.
좋은 부모도 화를 냅니다.
부모도 사람입니다.
피곤하면 예민해지고,
걱정되면 통제하고 싶어지고,
때로는 아이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라고 해서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화가 난다는 사실보다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화를 내더라도 아이를 모욕하거나 위협하지 않고,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아이의 책임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실수했다면 다시 관계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관계에서는 '어긋남'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언제나 서로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놀아달라고 하는데 부모는 쉬고 싶을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걱정해서 한 말인데 아이는 자신을 비난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을 관계의 어긋남(Rupture)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긋남 자체가 아닙니다.
어긋난 뒤 다시 연결되는 경험(Repair)입니다.
"아까 엄마가 너무 화를 냈어."
부모가 아이에게 사과한다고 권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는 매우 중요한 관계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까 엄마가 너무 크게 말했어."
"네가 많이 놀랐을 것 같아."
"화가 난 건 맞지만 그렇게 말한 건 엄마가 잘못했어."
이때 아이는 배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이 생겨도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구나."
"사람은 잘못할 수도 있고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구나."
이 경험은 아이가 앞으로 친구, 연인, 배우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부모가 오히려 아이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잘해주는 부모,
아이의 욕구를 미리 알아채는 부모,
아이가 실패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주는 부모.
겉으로는 이상적인 부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불편함과 좌절을 경험하고 해결할 기회까지 부모가 대신하게 되면
"나는 혼자서는 할 수 없어."
라는 경험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없는 세상이 아니라,
문제가 생겨도 견디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경험입니다.
부모가 완벽하려고 할수록 아이의 감정이 부담스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좋은 부모여야 해."
라는 기준이 너무 강하면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부모에게 실패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이가 울면
"내가 뭘 잘못했나?"
아이가 화를 내면
"내 양육이 잘못된 건가?"
라고 불안해집니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함께 견디기보다 빨리 없애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부모가 아니라,
슬프고 화나고 좌절하는 순간에도 함께 있을 수 있는 부모입니다.
아이에게는 '진짜 부모'가 필요합니다.
부모가 항상 웃을 필요도 없습니다.
힘들 때는
"엄마도 오늘 조금 피곤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부모의 감정을 아이가 책임져야 한다고 느끼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
가 아니라
"엄마가 오늘 피곤해서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감정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부모의 죄책감보다 중요한 것은 성찰입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죄책감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반드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나쁜 엄마야."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너무 지쳐 있었는지,
아이의 행동이 나의 어떤 감정을 건드렸는지,
내 부모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부모는 다음번에 조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함'보다 '정신화'일지도 모릅니다.
정신화(Mentalizing)란 나와 타인의 행동 뒤에 있는 마음을 생각해보는 능력입니다.
아이가 떼를 쓸 때
"왜 말을 안 들어?"
에서 멈추지 않고,
"지금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나는 왜 지금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도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이의 마음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마음도 이해하는 것.
이 능력이 관계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좋은 부모는 항상 침착한 부모가 아닙니다.
한 번도 화내지 않는 부모도 아닙니다.
아이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부모도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의 신호에 충분히 반응하고,
필요할 때 한계를 세우고,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좌절을 허용하며,
실수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어긋난 관계를 다시 연결하며,
자신과 아이의 마음을 계속 궁금해할 수 있는 부모.
그런 부모가 '충분히 좋은 부모'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마음 한마디
아이에게 상처를 한 번도 주지 않는 부모가 되려고 하면 부모는 끊임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관계에서는 실망도 있고,
오해도 있고,
갈등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더 중요한 경험은
"우리 부모는 절대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아."
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 실망할 수도 있지만 다시 이야기할 수 있어."
"엄마가 화가 나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관계가 잠시 어긋나도 다시 연결될 수 있어."
라는 경험일 수 있습니다.
완벽함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다시 돌아와 연결되는 관계가 아이에게 안정감을 만들어줍니다.
부모를 위한 한 줄
"좋은 부모는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부모가 아니라, 실수한 뒤 다시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부모입니다."
※ 본 글은 D. W. Winnicott의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 개념과 애착이론, 관계의 어긋남과 회복(Rupture & Repair), 정신화(Mentalizing)의 관점을 바탕으로 부모교육을 위해 쉽게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충분히 좋은 부모'는 방임이나 부적절한 양육을 정당화하는 개념이 아니며, 아동의 안전과 기본적인 정서적·신체적 욕구를 안정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은 양육의 중요한 토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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